피아노 음악
2011년 5월호
탁영아 피아노 독주회
4월 14일 호암아트홀
탁월한 연주자는 마치 타고난 듯 보인다. 무대에서는 결과만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탁영아의 독주회가 있었다. ‘Pure & Elegant Spring’ 라는 부제가 있는 3년 만의 한국에서의 독주회이다. 그녀가 보여준 순수하고 우아한 봄의 시정 속에는 음악에 대한 그녀의 남다른 조탁이 돋보였다. 연주곡목은 고전과 낭만시대 작품들로 이루어졌다. 제1부에서는 베토벤의 소나타와 리스트와 슐츠-에블러의 편곡 작품들이, 제2부에서는 슈베르트의 소나타가 연주됐다. 첫 곡은 베토멘의 소나타 ‘제6번 F장조’ 였는데, 느린 악장이 없는 경쾌하면서도 다양한 표정의 이 초기 소나타를 탁영아는 매 순간 감흥어린 터치로 흥미롭게 이끌고 갔다. 다음으로 편곡 작품들이 연주됐다. 리스트가 편곡한 슈베르트의 가곡들과 쇼팽의 녹턴, 그리고 슈트라우스의 왈츠를 슐츠-에블러가 편곡한 작품들은 그녀가 치면 우아한 춤이 되는 듯, 각 작품들의 음악적 흥취가 유연하면서도 탄력적으로 살아났다. 즐기면서 연주하는 그녀의 연주에서 기술적 노고는 감춰지고 오직 세련된 움직임만이 드러낫다. 제2부에서는 슈베르트의 소나타 ‘제19번 D. 958’이 연주됐는데, 탁영아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정감을 음악에 투명하게 담아냈다. 디테일은 섬세하고 음악의 이음새는 매끈하여 유려한 흐름 속에서 맑은 노래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이 작품을 참신한 감각으로 표현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로 다시 들려주어 신선한 음악적 격험을 선사했다. 이날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피아노가 그녀 앞에서 마치 잘 길들여진 생명체 같았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조련을 받은 듯 피아노는 그녀의 손끝의 미세한 표정 변화 하나하나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탁월함은 훈련과 습관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이날 그녀의 연주에서는 긴 시간 공교히 음악을 다듬은 이에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순정한 서정이 가득했다.
서주원